이 블로그 검색

수요일, 9월 23, 2009

외국어에 중독된 한국

외국어에 중독된 한국 [5] 대학이면 영어 좀 써야?
김어진 기자 hanmeu@chosun.com 기자의 다른 기사보기
기사 100자평(12)
입력 : 2009.09.22 14:51 / 수정 : 2009.09.22 15:10

시니어패스(senior pass)로 어반테라스(urban terrace) 갈 수 있나요?’ 서울시의 외국어 남용을 꼬집는 질문이지만, 사실 ‘외국어 중독’은 서울시만의 문제가 아니다. ‘S라인’, ‘리필’ 등 우리의 일상 대화에서도 외국어가 남용되지만 깨닫지조차 못하고 있기 때문이다. 조선닷컴은 연속 기획으로 한국 사회 전반의 외국어 중독 상태를 진단하고, 그 해결 방안을 모색해 본다/편집자 주
외국어에 중독된 한국 <5> 대학이면 영어 좀 써야?
며칠 전 H모(33)씨는 모교에서 배달된 우편물을 받고는 서너 번이나 받는사람의 주소를 확인했다. 보낸 곳은 자신이 졸업한 경희대가 맞았지만 ‘룩스 후마니타스(Lux Humanitas)’라는 개교 60주년 기념 뉴스레터(news-letter)의 이름이 너무나 낯설었기 때문이다.
H씨는 “이웃에 유학 다녀오신 분이 있어 처음에는 그 집 것인 줄 알았다”며 “설명을 보니 ‘Lux Humanitas’는 라틴어로 ‘인류애를 향한 빛’으로 경희정신을 상징한다는데, 학교 다닐 때는 들어본 적이 없다”고 고개를 갸웃거렸다. 이 학교 홈페이지(
www.khu.ac.kr)는 ‘경희정신’을 창의적인 정신, 진취적인 기상, 건설적인 노력으로 적어놓았을 뿐 문제의 라틴어 문구는 찾아볼 수 없다.
외국 학문을 수용하고, 교육하는 대학의 특성상 어느 정도의 외국어 사용은 불가피하다. 하지만 2000년대 들어 각 대학들은 국제화가 강조되고, 개교 50~60주년을 맞이하면서 각종 발전계획은 물론 학과 이름과 신축 건물에까지 무분별하게 외국어 이름을 붙여 왔다.
앞서 지적한 경희대의 개교 60주년 뉴스레터 제2호에서도 이와 같은 사례가 다양하게 발견된다. 이 자료에 따르면 경희대는 각 분야의 우수 교원 채용을 위한 ‘Search & Recruit Committee’에서 ‘Eminent/International Scholar’ 36명을 초빙했고(p.6), 2012년 국내 5위권 대학 진입을 위해 ‘KH Spirit & Pride Project’를 도입했으며(p.9), 글로벌 리더를 양성하기 위한 프로그램으로 ‘Global Collaborative Abroad’(p.12)를 갖고 있다. 이들은 ‘채용위원회’, ‘저명/국제 학자’, ‘경희 정신 & 긍지 사업’, ‘해외 협력’ 정도로 대체가 가능하다.
다른 대학 역시 장기발전계획에 대부분 ‘비전(vision)’을 사용하고, 발전기금 출연자들의 예우 등급도 거의 영어로 지었다. 서울대 50억원 이상 출연자들을 ‘프레지던츠 영예(president’s honor)‘라 부르는데 이 ‘president’는 ‘총장’으로 번역하면 안되고 그냥 ’최고‘의 뜻이라는 게 관계자의 전언이다. 동국대 역시 다이아몬드(50억원 이상), 에메랄드(10억~50억원), 사파이어(5억~10억원), 루비(1억~5억원) 등의 보석 이름을 사용하고 있다.
더 심각한 것은 영어에 서툰 지역사회의 노인들과 청소년 대상 사업도 외국어 이름을 붙였다는 점이다. 서울대의 경우 관악구의 다문화 가정을 방문해 외국어 및 한국어를 가르치는 ’해피컬쳐네트워크(Happy Culture Network)‘, 노인들의 건장 증진에 도움이 된다는 ’골든 웰빙 프로그램(Golden Well-Being Program), 관악구 학생을 대상으로 하는 ‘SNU멘토링(mentoring)’ 등을 운영 중이다. 프로그램에 참여했던 김모(22)씨는 “사업 이름만 보고 부담스러워 신청을 망설였다는 분들이 많았다”며 “어차피 프로그램 명칭은 시간이 지나면 잊어버리는데 굳이 어렵게 할 필요는 없을 것 같다”고 말했다.
학과 이름의 외국어화도 계속 확산일로이다. 과거 이공계열 전공에 ‘디지털’, ‘IT’등이 주로 덧붙여졌다면 2000년대 중반부터는 인문사회계열 학과에서도 영어 접두어가 쓰이고 있다. 서강대 신문방송학과는 2006년 커뮤니케이션학부로, 서강대 문화정보학과는 올해 초 미디어커뮤니케이션학과로 바뀌었다. 또 부산여대의 경찰경호행정학과도 하우징코디네이터(housing coordinator)학과로 간판을 다시 달았고, 경희대도 조리학과와 외식경영학과를 통합해 호스피탈리티(hospitality)학과를 만들 것으로 알려졌다.
하지만 젊은 대학생과 졸업생들은 이러한 현상을 심각한 문제보다는 불가피한 흐름이라는 받아들인다. 고려대 졸업생 박모(25)씨는 “교내에 처음 ‘하나스퀘어(square)’가 생길 때에는 영문 이름을 갖고도 논쟁이 많았다고 들었다”며 “하지만 이후 ‘타이거플라자(tiger plaza)’의 경우 상업주의 논란은 있었지만 이름에 대한 말들은 거의 없었다”고 교내 분위기의 변화를 전했다. 이화여대 재학생 정모(22)씨도 “신세대에게는 순 우리말이 아닌 한자어보다 영어가 익숙하고 편하다”며 “국제캠퍼스와 국제학부도 생기고, 외국 학생들도 많아졌는데 여러가지 명칭에 굳이 우리말을 고집해야 하느냐”고 반문하기도 했다.
------------------------
외국어에 중독된 한국[6] 우유 대신 '밀크(milk)' 파는 백화점김어진 기자
hanmeu@chosun.com 기자의 다른 기사보기 기사 100자평(48) 입력 : 2009.09.23 18:59 / 수정 : 2009.09.23 21:43시니어패스(senior pass)로 어반테라스(urban terrace) 갈 수 있나요?’ 서울시의 외국어 남용을 꼬집는 질문이지만, 사실 ‘외국어 중독’은 서울시만의 문제가 아니다. ‘S라인’, ‘리필’ 등 우리의 일상 대화에서도 외국어가 남용되지만 깨닫지조차 못하고 있기 때문이다. 조선닷컴은 연속 기획으로 한국 사회 전반의 외국어 중독 상태를 진단하고, 그 해결 방안을 모색해 본다/편집자 주
외국어에 중독된 한국 <6> 우유 대신 ‘밀크(milk)’ 파는 백화점
지난 21일 윤모(60)씨는 30년 단골인 S백화점을 찾았다. 1층 현관에서 발레파킹(Valet Parking, 주차대행) 담당 직원에게 차를 맡긴 그녀는 컨시어지 서비스(concierge service, 관문 서비스)에 따라 여성 컨템포러리 캐주얼(contemporary casual, 현대 일상복) 매장을 둘러봤다. 트리니티 라운지(trinity lounge, 백화점 멤버십 카페)에서 차를 마신 윤씨는 슈피터(shoe fitter, 구두 조언가)의 도움을 받아 구두 한 켤레를 구입한 후 지하의 월드구어메(world gourmet, 세계 미식가) 매장을 거쳐 프레쉬마트(fresh mart) 내의 미트(meat) 판매대에서 5-스타(star) 등심을 사서 귀가했다.
미국 뉴욕 배경의 외화 ‘섹스앤더시티(Sex and the City)’의 한 장면이 아니다. 서울에 사는 한 주부의 백화점 쇼핑이다. 하지만 백화점 곳곳의 명칭은 물론 제공하는 서비스까지 생소한 외국어가 많다. 윤씨는 “요새 백화점에서는 돈만 아니라 영어도 많이 알아야 제대로 대접받는다”며 “집에 판촉물이 오면 아들한테 꼭 물어봐서 공부하고 나온다”고 말했다.
▲ 시내 한 백화점의 지하 1층 식품 매장. 영어에 비해 한글 표기는 5분의1 정도에 불과하다. 한국 사회 곳곳에 외국어가 남용되고 있지만 백화점은 특히 심각하다. 쓰이는 외국어가 많고 다양한 데다가 어렵기까지 하다.
지난 10일 재개장한 S백화점 강남점의 지하는 매장 명칭이 대부분 외국어다. 음식을 요리해서 파는 델리존(Deli zone), 빵과 과자류를 판매하는 스윗존(sweet zone) 뿐 아니라 기프트 셀렉션(gift selection), 월드구어메(world gourmet), 프리미엄 그로세리(premium grocery)까지 매장명 15개 가운데 우리말은 ‘건강’ 하나밖에 없다.
같은 백화점의 다른 지점에 위치한 프레쉬 마트(fresh mart)는 내부 소매장에 미트(Meat), 데아리(dairy, 유제품) 등 크게 영문 표시를 한 반면 한글은 그 5분의1 정도 크기로 작게 병기했을 뿐이다. 명품 매장으로 유명한 G백화점도 동서로 위치한 두 건물을 동관, 서관이 아닌 이스트(East)관과 웨스트(West)관으로 부르고 있다.
김모(62)씨는 “커피 우유는 어디서 파느냐고 물었더니 밀크(milk)에 있다고 하더라”며 “늘어난 건 일본 관광객이라는데 왜 온통 영어판인지”라며 못마땅해 했다. 초등학생 자녀와 함께 왔다는 이모(37)씨는 “어느 백화점이나 지하만 가면 베지터블(vegetable), 베이커리(bakery) 등 애들 영어 단어 공부하기 딱 좋다”면서도 “구어메(gourmet) 처럼 생소한 단어를 애들이 물어봐서 난처한 적도 있었다”고 말했다.
백화점 측이 제공하는 각종 서비스는 더욱 난해하다. S백화점 홈페이지에 따르면 이 백화점에는 여성 고객을 위한 슈피터(shoe fitter)와 란제리 피터(lingerie fitter)를 있다. 이들은 구두와 속옷 구매를 전문적으로 도와주는 사람들을 말한다. 또 레스트룸(restroom, 화장실)에는 파우더룸(powder-room, 화장방)이 마련됐고, 베이비 컨설턴트(baby consultant, 유아상담사)도 대기 중이다.
H백화점 역시 최근 고객들의 잔치를 돕는 파티 스타일링 서비스 데스크(party styling service desk)를 열었다고 홍보 중이다. 한편 L백화점의 A관의 홈페이지 초기 화면은 전부 영어로만 꾸며져 외국 백화점을 잘못 찾아온 것이 아닌가 착각할 정도이다.
백화점 홍보 담당자는 “외부에서 입점한 곳들은 고유명칭을 사용하므로 외국어라도 어쩔 수 없다”며 “지하 매장 명칭을 외국어로 하는 것은 다른 시장이나 대형마트 등과의 차별화 목적이 크다”고 설명했다. 또 “‘슈피터’와 ‘란제리 피터’의 경우 일본 백화점의 제도를 수입하면서 그 이름까지 들여온 경우”라며 “마땅한 대체어를 찾지 못해 일단 그대로 사용하고 있다”고 덧붙였다.
“업무상 백화점을 찾았다가 에르메스(Hermes)를 ‘헤르메스’로 잘못 발음하는 손님을 뒤에서 비웃는 판매원들을 본 적이 있다”는 한 전자회사 마케팅 관계자는 “외국어 사용이 고급화인지도 의문이지만, 결국 고객들의 지적 허영심을 자극하는 상술”이라며 “백화점도 많은 사람들이 찾아 공공성이 있는 만큼 지나친 외국어 명칭은 재고해야 할 것”이라고 지적했다.
-------------------
외국어에 중독된 한국 (2) 영어 모르면 커피 한 잔도 못 먹어김어진 기자
hanmeu@chosun.com 기자의 다른 기사보기 기사 100자평(31) 입력 : 2009.09.15 13:02 / 수정 : 2009.09.15 16:09 시니어패스(senior pass)로 어반테라스(urban terrace) 갈 수 있나요?’ 서울시의 외국어 남용을 꼬집는 질문이지만, 사실 ‘외국어 중독’은 서울시만의 문제가 아니다. ‘S라인’, ‘리필’ 등 우리의 일상 대화에서도 외국어가 남용되지만 깨닫지조차 못하고 있기 때문이다. 조선닷컴은 연속 기획으로 한국 사회 전반의 외국어 중독 상태를 진단하고, 그 해결 방안을 모색해 본다/편집자 주
얼마 전 S커피전문점에서 아르바이트를 하던 권모(28)씨는 60대 노신사에게 혼쭐이 났다. 에스프레소 주문을 받고 “손님, 에스프레소는 진한 커피 원액만 아주 조금 나오는 메뉴인데 괜찮으시겠어요?”라고 물었다가 “늙었다고 무시하냐, 커피 이름도 모르고 사 먹는 줄 아느냐”는 호통을 들었기 때문이다.
“몇몇 메뉴는 손님들께 어떤 음료인지 설명을 꼭 하라고 교육을 받았다”는 권씨는 “어르신들 중에는 외국어라서 그런지 설명을 듣고 주문을 해도 나중에 원하던 음료나 사이즈가 아니라고 항의하시는 분들이 가끔 있다”고 하소연했다.
지난해 원두 수입량을 기준으로 국민 한 사람 평균 288잔을 마셨을 만큼 커피는 일상화됐다. 하지만 영어가 서툰 노년층은 물론 커피를 즐기지 않는 일부 젊은이들에게도 ‘커피 주문’은 여전히 낯설고 어렵다.
윤모(60)씨는 “커피 자체가 외국에서 들어온 것이니까 이름은 어쩔 수 없어도 왜 사이즈까지 대중소도 아닌 숏, 톨 이라니”라며 “대학 나와서 불편없이 살았는데, 내 돈 주고 커피 사먹으면서 가슴 졸일 줄은 몰랐다”고 말했다. 강모(38)씨도 “커피 주문하다가 보면 여기가 한국인지, 미국인지 헷갈린다”며 “멤버십 카드 업그레이드, ‘샷’ 추가, 테이크아웃 케리어(carrier) 등 거의 영어”라며 쓴웃음을 지었다.
포털사이트에는 ‘커피전문점에 가서 무시당하고 싶지 않는 법’까지 올라와 있다. 한 네티즌은 “‘아메리카노 작은 사이즈 달라고 하면 무난하다’며 ‘점원이 모르는 말을 자꾸하면 그냥 오리지널로 주세요’라고 하라”고 조언한다. 실제로 커피전문점 스타벅스에서 파는 음료 50여개 중 우리말 메뉴는 ‘우유’ 하나 뿐이다.
‘먹거리 영어 스트레스’는 1990년대 중반 패밀리 레스토랑이 등장하면서 본격화됐다. ‘TGI’, ‘베니건스’, ‘아웃백’ 등 음식점의 모든 메뉴는 외국어였고, 점원과의 대화도 ‘세팅(setting, 각 개인마다 주어지는 앞접시와 포크와 칼 등)’, ‘리필(다 먹은 음료수를 다시 채워주는 것)’ 등의 단어로 진행됐다. 계산서를 지칭할 때는 ‘빌지(bill+紙)’라는 정체 불명의 합성어까지 등장했다.
패밀리 레스토랑에서의 영어 남용은 일본에서도 문제가 됐다. 아베 신조(安倍普三) 전 총리는 2006년 취임 직후 ‘패밀리 레스토랑’ 총리라는 비아냥을 들었다. ‘아시아 게이트웨이(관문) 전략회의’, ‘신(新)건강 프런티어(첨단 분야) 전략회의’, ‘이노베이션(혁신)전략회의’ 등 외국어 회의체를 양산해 마치 영어 메뉴 투성이인 패밀리 레스토랑 같다는 것이다. 그는 첫 국회연설에서도 ‘프라이머리 밸런스(기초수지)’, ‘텔레워크(재택근무)’ 등 외국어를 109개나 사용하기도 했다.
이러한 경향은 최근에도 계속돼 전국 1400여개 매장을 운영 중인 CJ푸드빌의 9개 브랜드는 모두 외국어다. 빵집은 ‘뚜레쥬르’, 커피전문점은 ‘투썸플레이스’, 아이크림집은 ‘콜드스톤크리머리’이고 한식 비빔밥을 파는 곳도 ‘카페소반’이다. 판매하는 메뉴들도 외국어 일색이어서 황모(33)씨는 “아이와 아이스크림집에 가서 ‘딸기는 없어요?’라고 물었다가 아이에게 ‘창피해서 아빠랑은 못 다니겠다’는 말을 들었다”며 씁쓸해 했다.
어린이들이 주로 사 먹는 과자 이름의 외국어 남용은 더욱 심각하다. 지난해 한 일간지 조사에 따르면 생산 중인 과자 제품 449개 가운데 54.6%가 영어 등 외국어가 포함된 명칭을 사용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외국어와 외래어를 전혀 포함하지 않은 한글로만 된 과자 이름은 31.2%에 불과했다.
특히 ‘칩포테이토 오리지널’, ‘도도한 나쵸 오리지날’, ‘새우깡 미니팩’ 등은 우리말이 있는데도 영어를 사용한 경우로 지적됐다. 아울러 매운 맛을 표현하기 위한 ‘핫(hot)’, 크기를 줄였다는 의미로 ‘미니(mini)’ 등의 외국어를 사용하기도 했다.
50년 넘게 과자를 생산해 온 오리온이 최근 내놓은 제품들도 모두 영어 이름이다. ‘마켓오’ 관련 상품은 ‘워터크래커(Water Cracker)’, ‘리얼 브라우니(Real Brownie)’, ‘브래드칩(Bread Chip’ 등이고, ‘닥터유’ 계열은 ‘에너지바(Energy Bar)’, ‘비스코티(Biscotti)’, ‘라이스칩(Rice Chip)’으로 명명됐다.
하지만 과자를 주로 사 먹는 어린이와 청소년들은 영어 이름에 우호적이지 않다. 지난 2007년 강원도 평창의 도성초등학교 4학년과 6학년 학생 8명은 ‘과자 회사 사장님들에게 바랍니다’라는 청원을 한 포털에 올려 1000여명의 네티즌이 공감을 표시했다. 비슷한 시기에 초등학교 3~4학년을 대상으로 한 설문조사에서도 79%가 ‘친숙하고 어떤 과자인지 알 수 있다’는 이유로 우리말 이름을 선호했다.
국어 전문가들은 “상품명이 대부분 외국어, 외래어로 되어 있으면 당연하다는 생각을 가질 수 있다”며 “이는 자연스럽게 성인으로 이어져 우리말을 경시하고 외래어를 중시하는 고정 관념이 생길 가능성이 있다”고 우려를 표했다.
---------------------
외국어에 중독된 한국 <1> 성채와 궁전에 사는 한국인김어진 기자
hanmeu@chosun.com 기자의 다른 기사보기 기사 100자평(102) 입력 : 2009.09.13 21:26 / 수정 : 2009.09.14 11:07 ‘시니어패스(senior pass)로 어반테라스(urban terrace) 갈 수 있나요?’ 서울시의 외국어 남용을 꼬집는 질문이지만, 사실 ‘외국어 중독’은 서울시만의 문제가 아니다. ‘S라인’, ‘리필’ 등 우리의 일상 대화에서도 외국어가 남용되지만 깨닫지조차 못하고 있기 때문이다. 조선닷컴은 연속 기획으로 한국 사회 전반의 외국어 중독 상태를 진단하고, 그 해결 방안을 모색해 본다/편집자 주
외국어에 중독된 한국 <1> 성채(castle)와 궁전(palace)에 사는 한국인
“한국 학생들은 전부 엄청난 부자인 줄 알았어요. 다들 집이 성(castle) 아니면 궁전(palace)이더라구요.”
서울의 한 대학교에서 7년째 영어회화를 가르치고 있는 미국인 잭슨(40·가명)씨는 한국에 처음 와서 학생들이 어디 사는지 물었다가 깜짝 놀랐다. 트라팰리스(tra-palace), 롯데 캐슬(castle), 로얄 카운티(royal county) 등 하나같이 부유하고 고급스런 뜻의 외국어였기 때문이다. 그는 “나중에 성과 궁전이 너무 여러 곳이라서 물어보니까 아파트 상표였다”며 “얼마 후 사귀게 된 한국인 여자 친구는 자이(Xi)에 산다기에 속으로 좀 실망했는데 거기도 비싼 아파트였다”고 털어놓았다.
외국어 남용이 사회적 문제로 지적되는 가운데 아파트 이름 역시 예외는 아니다. 지난해 전체 인구 가운데 아파트 거주 비율이 43.9%로 단독주택의 42.9%를 넘어선 점을 감안하면 상황은 더욱 심각하다.
부동산정보회사 ‘부동산114’에 따르면 지난 9월 첫째주 전국에서 일반 분양된 아파트 7개 단지 2907가구 중 1개 단지 400여 가구를 제외하고는 모두 외국어 이름이었다. 이들은 각각 ‘힐스테이트’, ‘I PARK’, ‘웰카운티’, ‘휴먼시아’, ‘인스빌리베라’ 등이다.
이러한 아파트 명칭의 외국어화 경향은 2000년대 들어 심화됐다. 2000년 초 ’래미안(來美安)‘으로 ’브랜드 아파트‘ 시대를 연 삼성이 이어 건설한 고급 아파트에 ’타워팰리스‘와 ’트라팰리스‘ 등의 영어 이름을 사용하면서 대림의 ‘아크로비스타’, 금호의 ‘리첸시아(Richensia)’, 롯데의 ‘캐슬’ 등이 등장한 것이다. 이미 2000년대 중반 새 아파트의 47.8%가 외국어로만 조합된 이름을 갖고 있는 것으로 조사됐다. 90년대 신도시가 건설되면서 붙였던 ‘은하수 마을’, ‘샛별 단지’ 등은 더 이상 인기가 없었다.
문제는 외국어로 된 아파트 명칭 가운데 설명을 듣지 않으면 뜻을 알 수 없는 ‘암호’도 많다는 것이다. 배우 이영애가 선전해 유명해진 ‘자이(Xi)’는 ‘extra(특별한)+intelligent(지적인)’란 약어이고, 금호의 ‘리첸시아’는 ‘Rich(부유한)+Intelligentia(지식인을 뜻하는 러시아어)’을 합친 것이다. 수수께끼 같은 경우도 많아서 청담동의 ‘이니그마빌’은 실제로 ‘Enigma(수수께끼)+Village(마을)’의 합성이고, 포스코건설의 ‘더샾(Sharp,#)’은 ’내 삶의 반올림‘이라는 광고 문구까지 봐야만 이해가 가능하다.
서울 강남구 도곡동 모 영문명 아파트에 사는 최모(29)씨는 “이사 후 처음 찾아오신 할아버지·할머니께서 ‘네 부모가 노인네들 못 찾아오게 하려고 이름 어려운 집으로 이사한 모양‘이라고 농담을 하셔서 한참을 웃었다”고 말했다. 반포 자이 아파트의 이모(21)씨도 “집에 놀러 온 일본인 친구가 아파트 이름 뜻을 물어서 그제야 인터넷을 찾아 보고 알게 됐다”고 했다.
한편 이러한 아파트 명칭의 외국어 남용은 계층간 위화감을 심화할 우려도 있다. 비싼 아파트일 수록 외국어 명칭을 사용하는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
지난해 상반기 동안 매매된 아파트 가격이 높은 순으로 100개를 꼽으면 74개가 외국어 이름이었다. 이 중 우리말로 된 고가(高價) 아파트는 2000년 이전에 지은 강남구 압구정동의 미성, 한양, 현대 아파트와 동부이촌동의 대림 아파트 정도였다.
반면 임대 아파트는 대부분 우리말 이름이거나 외국어와 혼용된 경우가 많았다. 지난 9월 첫째 주 일반 분양된 아파트 중 유일하게 영어 이름이 아니었던 곳도 지방의 임대 아파트였다. 한창 외국어 명칭의 아파트가 등장하던 2001년에도 독자적인 임대 아파트 단지 17개 가운데 12개가 우리말로만 되거나 우리말과 영어가 섞여 있었다.
또 같은 건설회사도 고급 아파트에는 외국어 이름을 붙이고 있다. 대림은 ‘e-편한세상’과 ‘아크로비스타’, 금호는 ‘어울림’과 ‘리첸시아’, 롯데는 ‘낙천대(樂天臺)’와 캐슬을 각각 일반과 고급 아파트에 다르게 붙이고 있다.
동덕여대 채완 교수(국문학)는 “아파트 이름의 외국어 이름 선호는 ’소비자에게 아부하기‘라는 고전적인 광고 전략’의 하나”라며 “‘공부를 많이 하셨으니 그 정도 외국어는 아시겠지요’라는 의미로 현학적인 이름을 짓는 것”이라고 ’아파트 이름의 사회적 의미‘라는 논문에서 밝혔다.
또 다른 광고 전문가는 “어지간한 영어는 다 쓰여서 독일어와 프랑스어는 물론 신조어까지 만들어낼 지경”이라며 “3~4년 전까지도 ’(외국어가) 너무 심한 것 아니냐‘는 광고주가 한둘은 있었는데 요새는 한글 이름이 나오면 어색해할 정도”라고 전했다.

















댓글 없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