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방송 콘텐트 훔쳐가지마라` SBS·네티즌 큰싸움 나나 [중앙일보] 기사
나도 한마디 (2)
2009.12.29 19:14 입력 / 2009.12.29 19:52 수정
양양의 컬처코드
# 방송 프로그램의 저작권 한계는 어디까지일까? 최근 포털사이트 다음의 연예정보 서비스 ‘텔존’에 SBS가 제동을 걸고 나섰다. SBS의 방송저작물 유통을 담당하는 SBS 콘텐츠허브가 이달 초 텔존의 일부 게시물을 삭제해달라고 요청한 것이다. 삭제 대상에는 저작권 침해 정도가 낮은 화면 캡쳐, 움짤(움직이는 GIF 이미지) 등이 포함돼 그 적절성을 둘러싼 논란이 불거지고 있다. 현재 텔존은 화면공지를 통해 “SBS 방송 프로 관련 일부 게시물이 SBS측 요청에 따라 삭제되고 있다”며 “SBS 콘텐츠허브의 자체 모니터링이 적시한, SBS 방송 프로그램 화면을 캡처한 이미지, 방송 포스터 등 관련 이미지, 움짤 플짤(소리가 있는 움짤)을 포함하는 동영상 등”이라고 밝혔다. 삭제되는 게시물은 하루 수백 개에서 1000여 건에 이르는 것으로 알려졌다.
텔존은 TV 프로를 중심으로 한, 유저 주도 정보 공유 플랫폼이다. 방송 프로나 연예인 별로 게시판을 제공하면 팬들이 UCC를 만들거나 명장면·명대사를 캡쳐하며 시청소감을 공유한다. 해당 프로그램의 동영상·움짤·사진이 올라온다. 하루 방문자만 100만 명에 이를 정도로 인기다. 최근 종영한 SBS 드라마 ‘미남이시네요’에도 가수 유이가 텔존을 보는 장면이 나올 정도였다.
# SBS의 이번 조치는 이례적이다. 팬들이 참여해 화제를 만들고 프로의 인기를 확대 재생산하는 사이트는 방송사의 주요한 홍보 파트너였기 때문이다. 일부 지상파 드라마들은 공동 마케팅을 펴기도 했다. SBS가 방향을 급선회한 데는 더 이상 내 콘텐트 가지고 남의 배를 불릴 수 없다는 판단이 작용한 것으로 보인다. 업계의 한 관계자는 “이번 주장의 요체는, SBS 방송콘텐트는 SBS 사이트에서 정당하게 사용하라”는 것이라며 “현재는 텔존에 한정돼있지만 앞으로 이런 방침을 다른 포털 사이트나 게시판 등으로 확대할 예정으로 안다”고 말했다. 최근 SBS 콘텐츠허브는 비슷한 내용의 협조공문을 네이버 측에도 보냈다.
# 문제는 SBS가 단순 화면 캡쳐, 움짤이나 방송 영상 재가공 이미지 등을 모두 저작권법 위반사항으로 묶었다는 것이다. 특히 상업적 목적이 없는 네티즌들의 유희문화, 대중문화 텍스트를 비틀어 새로운 의미를 발생시키는 창의적인 2차 가공까지를 잠정적 도둑질로 규정하고 나선 점이다. 같은 기준을 적용하면 다음에서 ‘무한도전’으로 검색해 뜨는 11만개의 블로그 게시물도 이미지가 있다면 전부 불법논란을 피하기 힘들다. 지금은 이미지가 문제이지만 텍스트인 드라마 대사 역시 예외가 되기 힘들다는 지적도 나온다.
# 방송저작권의 범주를 어디까지 볼 것인가는 아직도 논쟁 중인 사안이다. (영화나 드라마의 장면 캡쳐는) “이미지 출처만 정확히 표시하면 인용의 범주에 든다”(채명기 한국저작권위원회 교육연수원장)에서부터 정반대 의견까지 존재한다. 사업자의 저작권이 보호돼야 하는 것과 마찬가지로, 개방과 공유라는 인터넷의 정신, 넷상에서 벌어지는 자유로운 유희문화도 존중돼야 하는 것 아닐까. 우리 콘텐트를 갖고 놀고 싶으면 우리 사이트에 와야만 합법이라는 식의 주장은, 인터넷의 특성과 이용자 편의를 무시한 사업자 위주의 발상에 가깝다. 이번 사태가 SBS 대 다음의 마찰이 아니라 SBS 대 네티즌의 구도로 번질 조짐이 보이는 것도 그 때문이다.
양성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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