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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요일, 3월 05, 2009

진시황·마오쩌둥 간체화 진두지휘

[중앙일보] 중국 두 번의 문자 통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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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는 은(殷)·주(周)시대 갑골문(甲骨文)을 시작으로 현대의 간체자(簡體字)로 변화해 왔다. 진시황(秦始皇·BC 259~BC 210)과 마오쩌둥(毛澤東·1893~1976)은 강력한 통일제국의 힘을 바탕으로 한자를 개혁한 두 주인공이다.

후한(後漢)시대 허신(許愼)은 『설문해자(說文解字)』에서 진시황의 문자개혁을 이렇게 설명했다. “진시황은 천하를 통일한 뒤 승상 이사(李斯)를 시켜 당시 진나라에서 쓰던 문자와 자형(字形)이 다른 문자를 사용하지 못하게 함으로써 문자를 통일했다. 통일 문자인 소전(小篆·진시황의 통일 문자)은 대전(大篆·통일 전 진나라의 문자)의 자형을 대부분 따르되 어떤 글자는 필획을 줄이거나 자형을 고쳐 만들었다.” ‘책에는 같은 문자를 사용하라(書同文)’는 진시황의 문자통일령으로 탄생한 소전체는 당시의 간체자였던 셈이다. 최근 고고학 발굴을 근거로 소전체가 진시황 통일 이전에 이미 널리 사용된 게 밝혀짐에 따라 진시황의 문자통일론이 과대 포장됐다는 반론도 나오고 있다.

마오쩌둥의 문자개혁은 한자 통일 범위를 넘어섰다. 궁극적으로 한자의 표음(表音)화를 주장한 마오는 “표음화에 앞서 우선 한자를 간체화해 당장의 수요에 적용할 것”을 지시했다. 그는 1953년 “초서체(草書體)를 이용해 규칙을 찾아내고 기본 형태를 만들어 규율적으로 간체자를 만들되, 한자의 수량도 반드시 대폭 줄여야 한다. 형체와 수량을 동시에 줄여야 비로소 간체자라고 할 수 있다”며 문자개혁을 독려했다.

마오쩌둥은 55년엔 지방 사투리를 없애고, 베이징 발음으로 통일하는 ‘보통화’(普通話) 개혁을 단행했다. 이듬해엔 5만 자 가까운 한자를 2238자의 ‘간체자’로 정리했다. 한자의 발음을 로마자로 표기하는 ‘한어병음’은 58년 전국인민대표대회의 동의를 거쳐 시행했다.

문자통일에 그친 진시황과 달리 마오쩌둥은 문자와 함께 발음과 표기도 통일하는 삼중의 문자개혁을 단행한 것이다.

신경진 중국연구소 연구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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